이번생은 처음이 아닙니다. 강아지의 계속 반복되는 윤회를 보게 됩니다. 더욱 특이한건 윤회되는 자신의 전생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죠. 대박 아닙니까? 사람도 이런 생을 반복했다해도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이런 조건하에 베일리의 생이 시작되고 반복됩니다.
견생이 시작된 이래 "자기 삶의 이유"를 알고자 했던 강아지, 그러나 첫번째 생은 얼마 못살고 사람들에게 잡혀 안락사 당합니다. 두번째 생에서 어떤 사람들이 강아지들을 잡아다가 우리에 넣어놓고 팔게 되는데, 우리에서 도망친 주인공 강아지가 또다른 강아지 도둑에게 잡혀, 더운날 차안에 갇히게 되죠. 더운 차안에서 갇힌 죽어가는 강아지를 본 이든과 엄마가 유리를 깨고 강아지를 구출합니다 .
그리고 강아지를 키우게 됩니다. 강아지 이름은 "베일리" 라 하고 베일리와 이든은 매우 친하게 되고, 서로를 지켜 줍니다.
이든은 마을행사에서 한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좋아하게 됩니다.
둘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이든은 럭비를 잘해서 대학을 럭비로 4년전액장학금으로, 그리고 한나는 같은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는것이 목표 였죠. 그런 이든과 사이가 안좋았던 학교친구가 이든의 집에 한밤중에 몰래 불꽃놀이하는 폭죽을 넣어 불이 나게 되고, 이모습을 목격한 베일리가 이든과 엄마를 구하고 이층에서 뛰어내리다가 이든은 다리를 다치게 됩니다. 다리를 다친 이든은 럭비도 할수 없고, 4년 전액 장학금을 탔지만, 대학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쌍한 이든, 자신의 처지에 깊게 좌절한 이든은 한나를 밀어내고, 우울에 빠집니다. 그리고 베일리도 생을 마감합니다.
베일리의 그 다음생은 귀여운 웰시코기네요. 아이들과 뛰어놀고, 사랑받고, 여전히 "강아지의 존재의미"를 고민합니다. 웰시코기의 삶도 끝나고, 다시 태어나는데 이번에는 경찰견입니다.
경찰견으로 시키는 것을 따라하고 물건을 찾아서 가르쳐 주면 칭찬받는것을 하나의 게임처럼 여깁니다.
경찰견으로 살면서 훌륭히 자기일을 잘하여 표창도 많이 받고, 어느날 범인을 쫓는 현장에 같이 투입되었다가, 범인과 싸우게 되는데 경찰대신 총을 맞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베일리는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베일리는 익숙한 냄새에 끌려 찾아간곳에 한나가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길을 헤매다 이든을 찾게 됩니다. 이든은 베일리인줄 모르고 개에게 "버디" 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버디는 홀로 있는 이든이 안타까워 한나를 찾아가서 둘을 이어주게 됩니다.
버디는 자신이 베일리 였음을 알려주려고 하죠. 그래서 베일리와 이든이 놀았을 때 했던 특이한 공놀이를 하려고 찌그러진 럭비공을 찾아 옵니다... 이든은 공놀이를 통해 버디가 베일리 였음을 확인하게 되고, 기쁨의 상봉을 합니다.
베일리는 이로써 " 강아지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같이 존재하고 살아가는것" 이 자신의 존재이유라는것을 ...
영화 감상평
베일리 어게인을 처음 봤을때, 우리집 미미모롱이를 보며, 이아이들도 몇번째 견생이 되는걸까? 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강아지로 투영된 인간의 삶,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강아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고양이나 다른 동물도 있지만, 애견 가구가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개의 삶이 매우 수동적이고, 인간의 삶에 가깝다 보니, 인간이 너무 많이 개의 삶을 규정짓는 게 많다는 것이 보이네요. 개를 인간의 장식품, 또는 애완용, 으로 취급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러자 루카스는 벨라가 혹시 밖에 있다가 동물 관리국 사람이 오면 집으로 뛰어가라고 훈련을 시키게 되는데 이것을 "집으로 가" 훈련이라고 기억합니다. 벨라는 집으로 가는 훈련을 하게 되고, 루카스는 핏불이 불법이 아닌 곳으로 이사가려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에서 동물관리국 사람을 만나게 되고, 벨라를 압수한다고 합니다. 벨라의 목줄을 풀어주며 집으로 가라고 하지만, 관리국 사람에게 잡히고 벨라는 도망을 치게 됩니다.
도망을 치게 되면서 늑대개들의 습격과 숲속에서 사람들이 퓨마를 총으로 쏴 죽이는것을 목격한 벨라, 그 옆에 작은 아기 퓨마가 같이 보고 있었는데, 벨라는 아기퓨마의 엄마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아기퓨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처럼 돌보게 되고, 서로 체온을 나누며 잠을 자기도 합니다.
벨라는 루카스를 찾아 집으로 가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많은 고생을 겪습니다.
벨라의 눈물겨운 고생담속에서도 루카스를 찾아가려는 영민함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개가 수백키로 떨어진 곳에서 집을 찾아 왔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혹시 그 강아지의 얘기를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닐까요?
어쨋든 단순한 동물도 정이 들어 서로를 죽도록 찾을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강아지의 그 의지는 어디서 나왔는지, 그 영민함도 어디서 생겨 났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지를 지닌 동물이 있다는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리고 동물이라고 함부로 취급하는 인간들이 나오는데,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강아지 목에 사슬을 채우고 자기 마음대로 개의 목숨을 좌우하려는 인간들의 모습에 반성을 하며, 인간과 개가 서로 상호보완하면서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